세계경제에서의 네덜란드의 헤게모니

by • June 27, 2014 • HistoryComments (0)622

세계경제에서의 네덜란드의 헤게모니

1600년에서 1750년까지는 세계경제의 공고화의 시대로서 그 성장률이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었다. 각 부문의 추세들이 어우러져 전체적인 중심을 만들어가는 시기였으며, 이에 따라 어려운 경제적 결정들이 부득이 강제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저치 면에서 갖은 뒤얽힘이 일어났다. 우리는 이 시기를 중상주의 시기로 알고 있다. 본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가지고 있지만, 중상주의란 경제적 민족주의의 국가정책을 포함하여 그 핵심은 금은의 움직임에서 보듯 무역차액의 창출에서 보든 상품유통에 대한 관심이었다. 중산주의 정책에서 성공은 생산효율에 달려있으며, 국가의 중기적인 목표는 이 생산효율을 높이는 데 있었다. 네덜란드는 생산효율면에서 볼 때 가장 먼저 헤게모니 국가로 출현한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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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게모니는 핵심부 지위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특정한 핵심부 국가의 생산효율이 극도로 높아져서 그 나라의 생산물이 대체로 다른 핵심부 국가들에게까지 경쟁력이 있는 상황, 그래서 그 핵심부 국가가 최대한 자유로운 세계시장에서 가장 큰 이익을 누릴 상황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이 생산성의 우위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하여 그런 국가는 안팎으로 생산 요소의 자유로운 흐름에 걸림돌이 되는 정치적 장벽을 없애거나 최소화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자리잡은 지배적인 경제적 세력은 그들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서 모종의 지적, 문화적 추진력들, 운동들, 이데올로기들을 장려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여기게 된다. 그러나 한 국가가 헤게모니를 확립하자 마자 그 국가의 헤게모니를 약해지게 된다. 이것은 그 국가가 약해져서가 아니라 다른 국가들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농,공업의 생산효율에서 압도적 우위에 섬으로써 세계 무역의 상업적 분배영역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세계교역 대부분의 중심으로서의 이익과 “보이지 않는 상품”인 운송, 통신, 보험의 장악에서 오는 이익이라는 서로 관련된 두 가지 이익이 따라온다. 이러한 상업상의 우위를 다시 은행업무와 직간접의 투자를 포괄하는 금융부문의 지배권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우위는 차례로 이루어지지만 겹치기도 한다. 또한 우위를 상실할 때도 같은 순서대로 생산, 상업, 금융의 차례로 잃게 된다. 따라서 특정한 핵심부 국가가 생산, 상업, 금융 모두에서 다른 핵심부 국가들에 대하여 우위를 점하는 시기는 극히 짧은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일시적인 최정상의 상태를 헤게모니라고 일컫는다. 1625년에서 1675년의 사이는 홀란트, 즉 연합주가 이러한 헤게모니를 획득한 시기였다.

 

네덜란드의 높은 생산효율은 가장 원시적인 생산 형태인 채집경제에서 이루어졌다. 즉 절임용 청어잡이 어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높은 효율은 1400년 무렵 하링보이서(haringbuis)라 불리는 청어잡이 배가 발명된 덕택이었다. 이 배는 조종이 쉽고 속도를 낼 수 있으며, 무엇보다 청어용 큰 그물을 쓸 수 있는 형태였으며, 갑판이 넓어 배 위에서 청어를 손질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더욱이 소금에 절여 보존하는 기술로 인해 6주-8주 정도 어장에 머물며 어업을 할 수 있었다. 청어잡이에서 나아가 아이슬란드의 명태잡이와 스피츠베르겐의 고래잡이도 지배하였다. 특히 고래는 식량보다는 고래기름과 뼈를 이용하는 공업용 자원으로 소용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17세기 네덜란드인들은 영국 앞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영국 항구에 싣고 가서 경쟁력 있게 매할 수 있었고 이 이익으로 발트 해 무역을 독점하는 기반을 얻을 수 있었다. 어업의 연쇄 효과는 어망을 생산하는 효과와 함께 조선업의 발전도 확보하여 한동안 순환적으로 서로를 강화시키는 효과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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