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세계 사회주의

1. 3세계 사회주의화의 특징

제3세계의 사회주의 운동은 기본적으로 계급모순을 타파하려는 사회변혁 운동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그 나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로는 사회변혁 운동이면서 동시에 식민지적, 신식민지적 지배와 착취를 극복하기 위한 민족해방 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전개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모순 내지 식민지 모순이 중요한 쟁점이 된다.이러한 조건 속에서 민족해방 혁명이 쟁취될 경우, 민족해방운동을 주도한 사회 계급의 성격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성장, 진화할 수 있는 결정요인으로 작용한다. 맑스주의적 프롤레타리아 정치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하여 민족해방 혁명을 주도하고 사회주의 혁명으로 진화시킨 대표적인 경우는 중국 혁명과 베트남 혁명이다. 중국혁명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선포로 귀결되었고, 이 모델 자체가 이후의 제3세계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두 번째 특징은 제3세계의 혁명은 전근대적 사회로부터 식민지적 지배를 매개로 하여 성립된 종속적 자본주의로 이행해 간 과도기 단계에서 발생하였다. 즉 자본주의적 공업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자본과 임노동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은 상태였으며, 오히려 농민과 지주의 관계가 사회의 주요모순으로 자리잡고 있는 상황이었다. 혁명의 형태 역시 도시 중심의 민중봉기가 농촌으로 파급되어가는 형태가 아니라 농촌을 먼저 장악하고 도시를 포위 공격하는 전략․전술적 특색을 보이며 진행되었다.

세 번째로 지금까지의 제3세계 혁명은 프롤레타리아적 정치세력 내지 혁명과정 속에서 자신의 계급적 성격을 프롤레타리아적으로 변화시킨 정치세력이 반제반봉건 민주주의 혁명을 주도하거나 또는 혁명의 성격이 반제반봉건 민주주의 혁명으로부터 반제반독점 민주주의 혁명으로 전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혁명을 주도함으로써 사회주의 혁명으로 진화되어왔다. 그러나 종속적 국가독점 자본주의 단계로 이행한 나라에서 반제반독점 민주주의 혁명이 성공한 사례는 아직 없었다. 이러한 나라는 종속자본주의의 축적 위기 등을 거치면서 강압적인 억압체계가 무너졌고, 정치적 민주주의가 도입되면서 사회주의로의 평화적 이행을 추구하는 형태로 나아갔다. 마지막으로 에티오피아, 콩고 등의 경우는 대중적 정치운동으로 이루어졌다기보다는 대중적 불만이 고조된 위기 상황 속에서 발생한 군사쿠데타의 산물이었다.

몇가지 특징에서 알 수 있듯이 우선 제3세계의 사회주의 혁명은 기존의 혁명이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존재한다. 제3세계의 혁명은 선진국들과 맺고 있는 관계, 즉 현대의 세계체제의 주변부에서 저발전되고 대외종속적인 상황에서 혁명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사적 시각으로 중심부와 주변부의 관계 속에서 역사적 시점에 따른 구분을 시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2.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주의

(1) 사회주의 혁명의 실험

19세기 후반 유럽대륙에서 건너온 사회주의 사상은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여러 호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를 억압하는 내외적인 저항 때문에 체제변혁의 성과는 달성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라틴아메리카는 중요한 실험을 시도해왔다. 쿠바 혁명은 경제성장의 달성, 제3세계 사회주의 운동의 기본목표인 제국주의 세력의 축출 등의 성과 때문에 성공적인 사회혁명으로 평가받아왔다. 혁명 직후 쿠바의 카스트로는 미국에 대한 종속으로부터 탈피하여 소련에 대한 의존정책으로 나아간다. 소련은 쿠바를 미국과의 대결에서 전략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정치논리의 우위’에 입각한 목표를 설정하였다.

니카라과 혁명은 무력혁명임에도 불구하고, 이질적인 혁명세력을 융합하여 미국 등 서방세력의 간섭에 대항하면서 정치적 다원주의를 실험해왔다. 폭압적인 소모사 체제(somocismo)에 대항하여 좌익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Sandinista National Liberation Front;FSLN)은 폭력혁명을 수행한 후 혼합경제정책을 채택하는 등 사회주의 체제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다양한 이념과 정치적 다원주의를 수용하였다. 급기야 1990년 초에는 사회주의 진영에서 최초로 공개적인 대통령 선거를 실시했고, 끝내는 우익집단에게 정권을 넘기고 만다.

1973년 아옌데의 ‘칠레식 사회주의’가 쿠데타에 의해서 좌초되고 만 사건은 자본가와 제국주의 세력이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제3세계 지역에서 선거를 통한 평화적 혁명노선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자하는 시도가 과연 타당한 것인가 하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현재에 들어 이루어지는 합의는 ‘칠레식 사회주의’의 좌절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며 정치적 대응이 적절했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점과, 정치적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주의 혁명의 달성이 거역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라는 점이다. 이는 니카라과의 선거와 연관해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다.

 

(2) 라틴아메리카 사회주의의 특징

남미뿐만이 아니라 제3세계의 사회에 있어서 사회주의 혁명과 민족해방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기존 체제의 계급 모순이 ‘제국주의적’ 지배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반외세 투쟁이 마르크시즘의 이데올로기적 명분보다 우선할 수 있다는 것이 남미 좌파의 특징이었다. 남미 좌파계열 사이에서 민족주의적 의식에 대한 그들의 강조를 반영하여 다양한 노선과 조류를 형성한다. 특히 노동조합 운동이 민족주의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는데 이는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나던 20세기 초의 경제구조가 반영된 것이었다. 철도, 광산, 제조공장, 전기 등이 외국인 소유 아래에 있었고, 따라서 이들 산업체에서 조직되는 노동운동은 반외세, 민족주의적 색채를 띄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는 기반을 형성하였다.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주의 운동은 이러한 민족주의적 경향성에도 불구하고 소련에 대해서만은 지나친 비주체적 태도를 취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정통파라고 불리는 대부분의 공산당은 20세기 전반부터 친소노선을 견지해왔고, 중․소 분쟁과 카스트로와 소련의 대결 시에 한결같이 소련의 입장을 지지해왔다. 이러한 경향은 현실적으로 소련의 지원을 필요로 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중요한 특징중의 하나는 비폭력 노선에 대한 부분이다. 대부분의 남미 공산당은 1959년 쿠바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비폭력적 혁명노선을 지켜왔다. 이들의 기본적인 전략은 객관적 여건이 충족될 때까지 기다리며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충시키는 것이다. 객관적 혁명 여건이 성숙되지 않으면 선거를 포함해서 정치적 연대결성을 통해서 또는 역량비축을 위한 통상적 정치활동에 국한되어야 한다. 그러나 쿠바의 혁명이 성공하고 어느 정도의 무장투쟁을 받아들이면서 평화적 투쟁노선과 병행을 모색하게 된다. 1960년대에는 과테말라, 베네수엘라 등지에서 폭력투쟁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대다수 정통파는 비폭력 노선을 유지하였다. 하지만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 선거에서 많은 지지를 획득하기란 쉽지가 않았으며, 진보적 정치세력과의 제휴가 필수 불가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정체성을 유지하고 정치적 기반을 확대시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으며 칠레와 우루과이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론적 논의의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 점진적인 투쟁, 광범위한 통일전선의 구축이라는 친소 공산당의 기본전략은 자연스럽게 부르주아 민주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을 구분하는 2단계 혁명전략으로 이어진다.

3. 아프리카의 사회주의

(1) 아프리카 사회주의의 실험

아프리카에 어떠한 경로로 사회주의가 소개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세네갈과 남아프리카에서 신생 소련정부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들 아프리카 지식인들은 자신의 종주국이던 유럽국가의 공산당이나 소련이 구상하는 사회․경제적 목표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국의 정치적 자유와 독립을 위해 소련 및 유럽의 공산주의자들을 동맹세력으로 이용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들은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 속에서 식민지배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지적 무기를 발견하였다. 따라서 아프리카인들은 소련이 제창한 세계혁명을 촉구하고 소련의 지원을 받으면서 정치적 독립을 위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소련의 태도가 혁명 후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보다는 소련 자신의 국가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로 변화하였고, 아프리카 마르크시즘에 대한 소련의 지원정책은 일관성을 잃게 되었다. 1920년대 소련은 프롤레타리아 세력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아프리카 상황 속에서 지역공산당보다는 민족주의적 부르주아와 유대관계를 맺는 것을 더 이익으로 생각하였다. 아프리카 급진세력들도 유럽지역의 공산당의 지원에 대해서 제국주의적 한계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 및 세계공산주의와 아프리카 민족주의 사이의 관계는 마르크스적 정치목표를 매개로 상호 보완적이라기 보다는 상호간에 분열되고 긴장된 관계가 유지되었다. 이러한 갈등 속에서 공산주의 운동의 영향력은 도시 주변이 일부 지식인이나 노동조합원들에 국한되어 미미한 영향력만을 발휘하였다. 결국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특유의 민족주의로 인해 세계공산주의와 근본적으로 이해를 달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국제공산주의보다는 흑인의 자유 해방을 위하여 투쟁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세력과 유대관계를 맺는 것을 더 우선시 하였다. 독립 이전의 아프리카 공산주의 운동은 계급에 기반을 둔 마르크스주의 운동이라기 보다는 반식민적 민족주의 운동이었다.

독립이후 아프리카 국가들의 국내경제는 외국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경제부문과 아프리카인 중심의 가난한 농촌경제가 분리되어 있었다. 그 양자 관계는 상호의존적이지 않고, 수출경제가 전통농촌을 착취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1960년대 몇몇 아프리카 국가들은 왜곡된 경제구조를 탈피하고자 사회주의를 채택하고 적극적인 개발정책을 추진한다.이 정치체제를 아프리카 사회주의 혹은 인민주의적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이들 국가들은 경제에 대한 국가 지도 이념으로서 사회주의를 주장하지만, 마르크스적 프로그램에 의해 훈련된 전위당보다 반식민투쟁성격이 강한 대중운동을 선호하였다. 공업화를 중시하여 중간재나 자본재의 생산 및 자급화를 시도하였으며 농업분야에서는 국영농장이나 협동농장이 구성되었다. 그러나 도시노동자에게 식량을 싸게 공급하기 위하여 국가유통기구가 낮은 가격으로 농산물을 구입하여 관리하였기 때문에, 농민들의 생산의욕을 저해하였다. 또한 무역 면에서는 수입에 대한 강한 보호정책을 취하였고, 1차 생산물의 수출을 억제하는 소극적인 무역 정책을 취하였다.

적극적인 사회주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독립초기의 경제적 제약성을 해소되지 않았고, 오히려 종속과 빈곤이 심화되었다. 소극적인 무역정책은 세계시장에서 1차 상품의 점유율을 감소시켜 외화 수입에 타격을 주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치세력 사이에 기회주의가 팽배하게 되었고, 국가제도도 잘 기능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반사회주의적 군사쿠데타의 위협과 서구의 신식민주의에 대한 종속이 심화되어 갔다. 이러한 국가의 정책적인 실패로 사회주의가 쇠퇴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사회주의 실패의 원인을 적절한 사회주의 정책을 추진하지 못한 데에 있다는 인식으로 인해서 인민주의적 사회주의의 실패를 대신하여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이러한 기조를 아프리카 마르크시스트(Afro-Marxist), 혹은 아프리카 공산주의(Afro-communism)라고 지칭한다. 아프리카 마르크시스트는 두가지 방식으로 등장한다. 군사쿠데타 후에 신군부 세력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국가지도이념으로 채택한 경우로서 콩고, 이디오피아, 마다카스카르, 소말리아, 가나 등이 이러한 경우에 들 수 있다. 두 번째 방식에는 포루투갈 식민지의 반식민 게릴라 운동 이후에 마르크스-레닌주의 국가를 창설한 경우이다. 대표적인 국가로는 앙골라와 모잠비크, 짐바베가 포함된다.

(2) 아프리카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역할

1970년대 아프리카 국가들이 마르크스주의에 매력을 느꼈던 이유는 부르주아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 이념이었고, 또한 1960년대 아프리카 사회주의의 불신에 대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국가통치이념으로 채택함으로써 소련과 동유럽의 발전된 공산국가처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었다. 동시에 정책과 전략 뿐만이 아니라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물질적 재원을 소련에게서 제공받을 수 있었다.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소련 모델이 정부의 효율성, 권위, 사회적 훈련을 약속해주는 것으로 인식하고 마르크스주의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마르크스주의는 국가통합(unity)과 일당국가 질서를 강조함으로써 1970년대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쿠데타 및 권력 유지를 정당화시켜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쿠데타를 일으킨 급진군부는 그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잘 알고 있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이념으로 선언하게 되었다. 그들의 마르크스주의는 실제로 패권다툼을 위한 수단이었고, 급진적 개혁에도 무지할 수 밖에 없었다. 정통성이 약한 초헌법적인 지배당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사회 각분야의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였다. 정권의 정당화 수단으로 사용된 마르크스주의는 반체제 인사들로 하여금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를 내세우며 정권의 정당성에 도전하게 하였다. 이처럼 아프리카에서 마르크스주의는 권력을 획득하거나 찬탈하기 위한 정당화 수단이었으며 권력유지 수단이기도 하였다.

경제분야에서는 소련의 성공이 아프리카를 고무시키면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기대를 높여주었다. 소련의 선전으로 인한 사회주의적 우수성에 대한 기대는 아프리카의 후진적 사회가 모방하여야 할 모델이었기 때문에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마르크스주의를 촉매로 한 동유럽, 소련과의 유대관계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아프리카 국가들은 소련 및 동구국가들로부터 충부한 원조를 얻지 못했다. 소련과 동구국가들은 전략적 이유와 경제적 이유 때문에 오히려 비공산주의 아프리카국가들에게 더 많은 원조를 제공하였다. 소련의 원조가 미치는 국가들의 경우에도 거의 군사원조에 치중되어있었으며 이는 국가경쟁력 발전에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4.  전망

동구와 소련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으로 말미암아 이제 남아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은 자본주의라는 거센 물길 위에 떠있는 조각배와 같은 존재가 되고 말았다. 이들 국가가 세계 자본주의로부터 단절되어 자립된 하나의 새로운 세계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이들 국가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세계 자본주의에 적응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주의의 정체성을 상실할지도 모르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현재의 사회주의 국가가 사회주의 체제를 지켜나갈지라도 이들 국가들은 세계 자본주의에 통합된 상태에서 체제 내부의 상대적인 자율성을 지닌 이질적인 부분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점에서 그들 국가가 사회주의 체제로 살아남느냐라는 문제인식은 더 이상 소용이 없어진다. 다시말해서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세계 전체를 하나의 경제적 체제로 통합하였고, 어떠한 자율성의 주장도 더 이상 무의미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세계적 수준으로 소수의 부국에게 부가 집중되었고, 제3세계 대부분의 지역들이 위기를 겪게 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과 제3세계 민중들은 세계경제의 위기에 대한 부담을 앞으로 더 안게 될 것이며, 선진 자본주의에 대한 제3세계의 종속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속과 강압은 이미 세계화된 자본주의 체제내부의 내적인 모순을 심화시킬 것이다. 현실사회주의가 사멸한 현시점에서 세계적 차원에 걸쳐서 새로운 수준과 형태의 사회주의 출현 조건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3세계 지역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다시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게 된다면 그 시점과 장소는 종속되어져 있는 제3세계에서 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전망속에서 제3세계를 살펴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있는 작업일 것이다. 10월 27일에는 브라질의 룰라가, 11월 24일의 에콰도르 대선 결선투표에서 중도좌파 루시오 구티에레스가 새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미 우고 차베스에 의해 사회주의 좌파의 집권이 실현된 베네수엘라와 2003년 3월에 당선이 예상되는 아르헨티나의 좌파정부 등의 중남미의 좌파도미노 현상은 사회주의의 새로운 전망을 예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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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진,『제3세계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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